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 평가 절차와 사례
9월 25일, 2025 | 10분 읽기
2024년부터 EU의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이 시행되면서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 개념이 글로벌 지속가능성 보고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제 이중 중대성 평가는 낯선 개념이 아닙니다. 국내 대기업들은 이미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이중 중대성 평가를 필수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특히 EU 진출 기업이나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하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도 ESG 공시 강화 방안을 통해 중대성 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많은 기업들이 기존의 단일 관점 중대성 평가에서 이중 중대성 평가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제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할 것인가’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1. 이중 중대성의 개념
기존 중대성 평가와의 차이
많은 기업들이 이미 중대성 평가를 해왔지만, 대부분은 ‘외부 환경이 우리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만 집중했습니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 규제가 우리 사업에 미치는 위험이나 원자재 가격 상승이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중 중대성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우리 회사가 외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을 추가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착한 일을 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미치는 영향이 결국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시스템적 사고에 기반합니다.
두 가지 축
1. 영향 중대성(Impact Materiality) – Inside-out 관점
이는 우리 회사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직원을 고용하고,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면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변화를 포함합니다.
- 환경 영향: 탄소배출, 폐기물, 생물다양성 등
- 사회 영향: 인권, 노동권, 지역사회, 고객 안전 등
2. 재무 중대성(Financial Materiality) – Outside-in 관점
이는 기존에 많이 해왔던 방식으로, 외부 변화가 우리 회사의 돈과 직결되는 부분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다만 과거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 전환 리스크: 정책 변화, 기술 발전, 시장 변화
- 물리적 리스크: 기후변화, 자원 부족
- 기회: 새로운 시장, 비용 절감, 브랜드 가치
2. 4단계 평가 절차
이중 중대성 평가는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논리적인 4단계 과정을 따라 진행됩니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각 단계가 다음 단계의 기초가 되므로, 순서대로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단계: 지속가능성 맥락 이해
이 단계는 마치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회사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하는지를 명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이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면 나중에 중요한 이슈를 놓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핵심 활동:
- 사업 활동 매핑: 주요 사업 부문, 제품/서비스, 지리적 범위 분석
- 가치사슬 분석: 상류(조달), 자체 운영, 하류(유통·사용·폐기) 전 과정 파악
- 이해관계자 매핑: 내외부 이해관계자 식별 및 관심사 분석
2단계: 지속가능성 이슈 식별
이제 체크해야 할 이슈들의 목록을 만드는 단계입니다. EU에서 제공하는 표준 목록(ESRS)이 있어서 이를 기본으로 사용하되, 우리 회사만의 특별한 상황이나 업종별 특성도 추가로 고려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설마 우리와 관련이 있을까?’ 싶은 이슈들도 일단 포함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나중에 걸러내는 것은 쉽지만, 처음에 놓치면 다시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ESRS 10개 주제 영역:
- 환경(5개): 기후변화, 환경오염, 수자원·해양자원, 생물다양성·생태계, 순환경제
- 사회(4개): 자체인력, 가치사슬인력, 영향받는지역사회, 소비자·최종사용자
- 거버넌스(1개): 기업운영·행동
추가 고려사항:
- 업종별 특성 반영
- 기업별 고유 이슈 발굴
- 최근 이슈 및 규제 동향
3단계: 영향·위험·기회(IRO) 평가
이 단계가 가장 핵심이면서도 어려운 부분입니다. 앞서 식별한 수십 개의 이슈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평가해서 점수를 매기는 과정입니다. 단순히 ‘중요하다/안 중요하다’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중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측정해야 합니다.
두 가지 관점에서 각각 평가해야 하는데, 같은 이슈라도 두 관점에서의 점수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환경 이슈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만 우리 회사 재무에는 당장 큰 영향이 없을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영향 중대성 평가 기준:
- 규모(Scale): 영향의 심각성 정도
- 범위(Scope): 영향받는 인구나 환경의 범위
- 되돌릴 수 없는 정도: 영향의 회복 가능성
재무 중대성 평가 기준:
- 발생 가능성: 위험이나 기회가 실현될 확률
- 재무적 영향: 매출, 비용, 자산가치 등에 미치는 영향
- 시간 범위: 단기(~3년), 중기(3-10년), 장기(10년+)
평가 방법:
- 5점 척도 정량 평가
- 내부 전문가 워크숍
- 외부 이해관계자 인터뷰
- 온라인 설문조사
4단계: 중요 이슈 선정 및 보고
마지막 단계는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정말 중요한’ 이슈들을 골라내는 것입니다. 모든 이슈가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여기서 가장 어려운 것은 ‘어느 정도로 중요해야 진짜 중요한 것인가?’라는 기준을 정하는 것입니다. 이를 임계값(threshold)이라고 하는데, 너무 높게 잡으면 중요한 이슈를 놓치고, 너무 낮게 잡으면 너무 많은 이슈가 선정되어 집중도가 떨어집니다.
임계값 설정:
- 정량적 기준: 5점 척도에서 3.5점 이상 등
- 정성적 기준: 전문가 판단, 이해관계자 공감대
- 복합적 기준: 정량과 정성을 결합한 종합 판단
결과 도출:
- 영향 중대성 또는 재무 중대성 중 하나라도 임계값 초과 시 중요 이슈로 선정
- 일반적으로 10-20개 내외의 중요 이슈 도출
- 중대성 매트릭스 작성 및 상세 문서화
3. 주요 고려사항
실제로 이중 중대성 평가를 진행하다 보면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느끼게 됩니다. 완벽한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며, 명확한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들을 미리 알고 준비하면 훨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의 어려움
가장 많은 기업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데이터 문제입니다. 특히 공급망이나 제품 사용 단계의 데이터는 수집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데이터를 기다리다가는 영원히 시작할 수 없으니,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문제: Scope 3 배출량 등 가치사슬 데이터 부족, 정성적 영향의 정량화 어려움
해결방안: 단계적 접근, 대리 지표 활용, 외부 데이터 활용, 합리적 추정 방법론
이해관계자 참여
이해관계자 참여는 평가의 신뢰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이지만, 동시에 가장 복잡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입장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핵심: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서로 다른 관점을 조율
전략: 목적 명확화, 맞춤형 접근, 양방향 소통, 피드백 순환
임계값 설정
임계값 설정은 가장 주관적이면서도 중요한 판단입니다. 정해진 공식은 없고, 각 기업의 상황과 판단에 맡겨져 있어서 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업의 철학과 우선순위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고려사항: 업종 특성, 사업 전략, 이해관계자 기대, 자원 제약, 동종업계 비교
4. 기업 사례
이론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실제 기업들의 경험을 통해서는 훨씬 명확해집니다. 각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고, 어떤 어려움을 겪었으며, 어떤 성과를 얻었는지 살펴보면 우리만의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해외 사례
Unilever: 제품 생애주기 접근
Unilever는 샴푸부터 비누까지 일상용품을 만드는 회사로서, 제품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버려지는 전체 과정에서의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했습니다. 특히 소비자가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예: 샴푸 사용 시 온수 사용으로 인한 탄소배출)까지 포함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 주요 이슈: 기후변화(제품 사용 시 온수), 포장재(플라스틱 폐기물), 공급망 인권
- 대응: 농축 제품 개발, 플라스틱 50% 절감 목표, 지속가능한 소싱 강화
IKEA: 순환경제 모델
IKEA는 가구라는 내구재의 특성상 ‘일회성 판매’에서 ‘지속적 관계’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해야 한다는 인사이트를 얻었습니다. 고객이 가구를 버릴 때까지가 IKEA의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순환경제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 주요 이슈: 목재 자원, 고객 사용 패턴, 순환 비즈니스 모델
- 대응: 재생 소재 확대, 렌탈·구독 모델, 제품 회수 프로그램
국내 사례
SK D&D: 건설업계 체계적 접근
SK D&D는 국내 기업 중에서도 ESRS 기준에 맞춘 체계적인 이중 중대성 평가를 실시한 선도 사례입니다. 건설업의 특성상 개별 프로젝트마다 다른 영향을 미치고, 완공 후에도 장기간에 걸쳐 영향이 지속된다는 점을 고려한 평가 방법론을 개발했습니다.
- ESRS 요구사항 충족 위한 4단계 프로세스 적용
- 건설업 특화 고려: 프로젝트 기반 특성, 지역사회 영향, 공급망 복잡성
- 주요 이슈: 기후변화, 안전보건, 순환경제, 지역사회
한국 기업들의 확산 현황
최근 들어 국내 주요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이중 중대성 평가가 필수 요소로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 LG, 현대자동차, 포스코, 신한금융그룹 등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2023년부터 이중 중대성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금융업계에서는 금융감독원의 ESG 공시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중 중대성 평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제조업계도 글로벌 공급망 요구사항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이중 중대성 평가는 ‘선택사항’이 아닌 ‘기본 요구사항’이 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특히 상장기업이나 글로벌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5. 결과 활용방안
이중 중대성 평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더 나은 의사결정을 위한 도구입니다. 평가 결과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투입한 시간과 노력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이를 보고서 작성 목적으로만 활용하는 기업들도 많은데, 이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략 수립 연계
평가를 통해 도출된 중요 이슈들은 기업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재검토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간과했던 이슈가 매우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 중요 이슈 중심의 전략적 우선순위 재조정
- 이슈별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목표 수립
- 한정된 자원을 중요 이슈에 집중 투입
리스크 관리 통합
기존의 리스크 관리 체계는 주로 재무적 리스크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ESG 리스크도 동등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이중 중대성 평가 결과를 기존 시스템에 통합하면 더 포괄적인 리스크 관리가 가능합니다.
- 새로 식별된 ESG 리스크를 기존 리스크 등록부에 추가
- 정기적 리스크 모니터링에 ESG 리스크 포함
- 리스크별 구체적 대응 및 완화 계획 수립
이해관계자 소통
평가 과정에서 참여한 이해관계자들은 결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앞으로 어떤 계획인지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신뢰 관계 구축의 핵심입니다.
- 이해관계자 그룹별 관심사에 맞춘 맞춤형 커뮤니케이션
- 중요 이슈 대응 진행상황 정기적 공유
- 협력 기회 모색 및 지속적 피드백 수렴
6. 실무 체크리스트
실제로 이중 중대성 평가를 시작할 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다음 체크리스트는 실무에서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정리한 것으로, 단계별로 점검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준비 단계
- 담당 조직 구성 및 경영진 지지 확보
- 사업 활동 및 가치사슬 매핑
- 이해관계자 목록 정리
- 기존 데이터 수집 체계 점검
실행 단계
- ESRS 주제 검토 및 기업별 이슈 추가
- 평가 기준 및 척도 정의
- 내부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 평가 실시
- 임계값 설정 및 중요 이슈 선정
활용 단계
- 중요 이슈별 목표 및 KPI 설정
- 리스크 관리 체계 업데이트
- 지속가능성 보고서 반영
- 정기 검토 및 업데이트 체계 구축보
- 사업 활동 및 가치사슬 매핑
- 이해관계자 목록 정리
- 기존 데이터 수집 체계 점검
실행 단계
- ESRS 주제 검토 및 기업별 이슈 추가
- 평가 기준 및 척도 정의
- 내부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 평가 실시
- 임계값 설정 및 중요 이슈 선정
활용 단계
- 중요 이슈별 목표 및 KPI 설정
- 리스크 관리 체계 업데이트
- 지속가능성 보고서 반영
- 정기 검토 및 업데이트 체계 구축
이중 중대성 평가는 단순한 규제 준수를 넘어서 기업의 지속가능성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는 기회입니다. 기업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동시에 외부 변화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더 강건하고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성공의 핵심은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 체계적이고 투명한 프로세스, 진정성 있는 이해관계자 참여, 그리고 평가 결과의 전략적 활용입니다.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여정에서 이중 중대성 평가가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할 것입니다.